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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부자연구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by GJ자유 2022. 10. 11.

자본주의에서 돈은 중요하다.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반대로 돈이 없다면 무엇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되면서 시작된 것이 바로 분업이기 때문이다.
분업으로 내가 만든 것을 내가 쓸 수 없게 되었다.
남이 만든 것을 내가 쓰며 내가 만든 것을 남이 쓰게 되었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땠는가?
웬만한 것들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썼다.
짚신을 엮어서 직접 신발을 만들어 신었고 농사를 지어서 내가 먹었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땔감으로 썼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현재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마트에서 쌀을 배달 시키고 집에 보일러를 틀어서 해결한다.
즉 자본주의는 분업으로 모두 남이 생산하는 것을 내가 사다 쓰게 되었다.
분업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남이 내 물건을 가져다 쓰고 내가 남의 물건을 가져다 쓰려면 교환수단이 필요하다.
교환수단은 바로 화폐 즉 돈이다.
그래서 나는 남이 가진 돈을 욕망한다.
남도 내가 가진 돈을 욕망한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돈이 많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얼마나 바라던 일인가?
인간은 맹수의 발톱도 맹금류의 날개도 없다.
따라서 인간은 약하게 태어났으니 태고적부터 자연에서 살아남으려면 무리를 이루어 살아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남에게 의지하게 된다.
남에게 의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타인의 호의적인 관심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의 관심을 받으면 행복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물건을 사고 나오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돈을 상품과 바꿨기 때문이다.
돈은 상품과 무한의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품은 돈으로 바꾸는 것이 제한적이다.
상품을 샀다가 돈과 교환하려면 중고물품으로 싸게 팔아야 겨우 디스카운트 된 돈으로 바꿀 수 있다.
돈은 무한하게 상품과 교환 할 수 있다는 꿈을 주지만 상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래서 돈과 상품과 교환하면 꿈이 없어져 허전한 것이다.
돈을 주고 상품으로 바꿔 꿈을 빼앗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속담에 돈이 지갑에 두둑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다.
부동산 값이 오르면 팔지 않았는데도 없던 소비도 한다.
이것이 돈이 주는 꿈이고 자유다.

그러나 돈이 주는 자유는 상상만 할 수 있다.
상품은 실제 내가 먹고 자고 타고 다닐 수 있지만 돈은 그럴 수 없다.
관념적 상상이 지나치면 구두쇠가 된다.
돈은 나에게 모든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모으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한다.
돈이 쌓이는 계좌잔고만 보아도 너무 기쁘고 즐겁다.
그래서 모으기만하고 쓰지는 않는 구두쇠가 된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쓰지 않는 사람은 거지 팔자라는 말이 있다.
돈이 많아도 쓰지 않으니 거지같이 산다.
돈을 못 쓰는 이유는 만약 돈을 다 써버린다면 과거에 돈이 없어서 고생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의 트라우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주에 단무지 안주 삼아 먹고 버스 한 번 타고 오면 될 거리를 공짜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며 시간을 허비한다.
돈은 무한한데 나의 유한한 시간과 바꾼다.
결국 돈은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된다.
반대로 자식은 부모가 죽고나서 부모가 모은 돈을 다 쓰고 사니 부자 팔자다.

그러나 돈은 자신만의 상상일뿐이다.
어떤 것이든 이루고나면 허무할 뿐이다.
100억 원이 목표인가?
이루고나면 허무하다.
원하는 대학을 들어갔다면 행복할까?
몇 달은 행복하겠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선망하는 전문직 직업을 가졌다면 행복할까?
동네 의사에게 가서 물어봐라 의사가 되어서 행복하냐고?
아마도 무슨 헛소리를 하냐 그렇게 쳐다볼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대단한 것도 금새 익숙해지고 담담해진다.
왜냐하면 익숙해져야 또다시 사냥에 나서기 때문이다.
어제 잡은 사냥감에 만족하면 몇 일은 버티겠지만 곧 굶어죽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쁨도 쉽게 익숙해지지만 고통도 익숙해진다.
여자가 임신의 고통을 오랜 세월 기억하고 있다면 인간은 다시는 아기를 낳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지난 세월을 항상 추억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는 레트로 드라마가 잘 팔리고 나이 들면 동창회에 나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돈을 벌고 모으고 투자한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고도로 분업화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목표가 되면 결국은 돈만을 모으다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늙어간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돈은 상품을 교환할 수 있지만 상품과 교환하는 순간 무한교환 가치의 돈이 사라지며 행복은 끝나고 허무가 시작된다.
백화점 직원은 내가 가진 돈으로 자신의 상품을 사줄 것이라는 기대에 친절하지만 카드로 긁는 순간 친절은 끝난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타인의 욕망이다.
타인의 욕망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다.

이것이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다.
불교는 타인의 욕망을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불교의 목표는 성불하는 것이고 다시는 환생하지 않고 먼지가 되어 없어지는 무아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상당히 비세속적이다.
그러나 서양철학은 다르다.
타인의 욕망을 인정하고 추구한다.
그것이 인간의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 얘기한다.

그렇다면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마르크스는 하나의 해법을 제안했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인간을 인간으로서만, 사랑을 사랑으로서만, 신뢰를 신뢰로서만 교환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자본주의를 살면서 돈으로 무엇이든 교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예술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돈이 아닌 예술적인 교양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예술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돈만 많고 무식한 부자를 천박하다고 한다.

결론 : 돈으로 살 수 있는 친절과 사랑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허무하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사랑으로만 사랑을 교환 할 수 있고 신뢰로만 신뢰를 교환 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을 받으려면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했을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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