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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도서리뷰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by GJ자유 2021. 1. 11.

 

남자 김도균은 여자 임현주를 처음부터 변함없이 마음에 두고 있었다. 비록 여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녀를 향한 사랑은 잔잔한 파도처럼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라는 바람이 찾아왔다. 그녀는 남자에게 한 시집을 주며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되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찬스라고 여기었다. 그녀와의 데이트가 끝날 무렵,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는 한 시를 적어갔다. 바로 그녀가 쪽지를 꽂았던 부근에 있었던 시 <사람이 온다>였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 그녀를 위해 밤새 시를 외우며 그녀에게 시를 전달했던 것이다. 그렇게 진정성 있는 김도균의 사랑을 담은 시 한편이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가 되었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하트시그널2 시집이라는 타이틀이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ㅡ사람이 온다(44쪽)

이 시에는 인간은 언제나 어딘가에 사람이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의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 문은 열고 닫고 하는 것이다. 사람을 문이라고 보았을 때, 인생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간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있는데(그렇다고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문을 닫아주어야 할 사람을 우리는 마냥 기다린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훗날 부부가 되어 줄 인연의 사람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나의 대인관계의 종지부를 찍는 일이기에 문을 닫는다라고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즉 이런 저런 사람을 많이 만난다고 하여 운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워보이는 일이나, 마침내 그 사람이 온다는 것, 참으로 큰 황홀경이다. 하트시그널2을 통해 소개된 메인 시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한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ㅡ청춘의 기습(50쪽)

제목에 앞서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살면서 얻는 일보다 잃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잃어가며 때론 빼앗겨가며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 한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잔상을 가슴 깊이 남기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시인의 저 한 줄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떤 주머니를 가졌기에 무언가를 잃을 수 있었던 걸까? 그 주머니는 무엇을 담고 있었던 걸까. 결국 사람을 주머니라고 본다면, 새삼스레 내가 잃었던 것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잃었던 것들을 다시 주머니에 담을 수 있도록 유심히 들여다볼까.

 

“한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

한 사람이 깊숙이 칼에 찔리는 것은,

지구가 상처를 받는 것,

지구의 뼈가 발리고 마는 것”

ㅡ지구 서랍(54쪽)

공리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최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한다는 어떤 한사람 생각이다.

여기서 시인은 어떻게든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궁리를 해보았는데 위 글귀와 같은 생각을 해본다고 말한다. 시인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어느 한 작은 곳에 한 사람이 저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그런 한 사람들이 모여 결국 지구가 되는데, 지구가 상처를 받고 뼈가 발린다는 부분이 더욱 더 한 사람이 느끼는 상처의 깊이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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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식당의 젓가락이 한 식당에 모여서도 원래의 짝을 잃도 쓰여지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무심코 누군가 통해서 두 개를 집어 드는 순간

‘우리가 그 반이구나’ 알게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이 한 배를 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미어지게 그림이 되는 것.”

ㅡ두 사람(57쪽)

이번 시집을 보며 가장 감동을 받은 시다. 식당에 가면 무수히 많은 젓가락들을 바라보며, 본래 식당에 들어올 때는 짝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동안 짝을 잃은 채, 본래 짝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사용되어 지는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저 두 개의 젓가락이 들리는 순간, 바로 짝이 되어 음식을 짚는데 사용된다. 젓가락도 그럴진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짝을 이룬다는 것, 그거 자체만으로도 미어지게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시인의 생각이 결혼을 앞둔(또는 앞둬야 할) 나에게 너무나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시절이었다는 말은

그 오래된 시간을 부를 수도

다시금 사용할 수도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ㅡ새벽의 단편(110쪽)

 

우리가 살아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이 넉넉한 쓸쓸함(144)

위 세 개의 구절은 과거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언가의 값을 매기거나 가치를 측정할 때 저울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사랑도 비슷한 것 같다. ‘시간이라는 저울에 달렸을 때 비로소 과거가 아름다움이란 포장지로 포장되는 것 같다. 좋은 이유이든, 안 좋은 이유이든, 아픈 사랑이든, 좋았던 사랑이든 다시 돌아갈 수 없음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첫사랑을 잊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첫사랑을 만난 적이 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았을 경험이 있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에 내가 사랑하던 모습이 아니기에 실망감이 생겼던 것 같다. 비록 과거의 세계에는 사랑이 부족하여 헤어졌지만, 훗날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는 말이, 이런 내게 너무나도 아름답게 들린다.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사람 냄새가 난다’. 유명 가수 개리는 사람 냄새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병률 시집을 통해서 느낀 바는, 참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시인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느낌은 받지 않았지만, 사람에 대해서 섬세한 배려와 생각을 하는 작가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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